정체성에 대한 질문
요즘 나는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 앞에 자주 멈춰 선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결국 그 답은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대단한 답을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선택을 해왔는지,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앞으로 어떤 문제를 풀어보고 싶은지, 한 번쯤은 글로 정리해두고 싶었다.
나는 언제나 그리디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나는 인생의 방향을 늘 그리디(greedy)하게 선택해왔다.
여기서 그리디하다는 것은, 매 순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장 원하는 선택을 존중해왔다는 뜻이다. 먼 미래의 최적해를 계산해서 역산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 가장 원하고, 가장 잘하고, 가장 즐거운 쪽으로 손을 뻗어온 것이다. 선택의 첫 번째 기준은 언제나 "내가 원하고, 잘하고, 하고 싶고, 즐기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수학이 좋아서 수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프로그래밍에 더 큰 흥미를 느껴 컴퓨터공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그리고 지금, 혹은 가까운 미래에는 자신만의 철학을 바탕으로 IT 제국을 세운 이들처럼, 나 또한 그 흐름에 올라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물론 그리디 알고리즘이 늘 전역 최적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매 순간 최선이라 믿은 선택들이 모여, 돌이켜보면 조금 돌아온 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선택들은 각 순간에는 진심이었고, 그 진심들이 이어져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러니 이 방식을 후회하기보다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겠다는 쪽에 가깝다.
프로그래밍이 컴퓨터 안에서 돌아가는 하나의 인생 시뮬레이션이라면, 사업은 그 세계를 컴퓨터에서 인간 세상으로 확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코드로 논리를 짜고 시스템을 설계하던 감각을, 이제는 사람과 사회를 향해 써보고 싶다.
내가 풀고 싶은 문제: 정보의 비대칭
내가 사업을 통해 풀고 싶은 문제는 명확하다.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해서, 더 많은 사람이 투명하고 적절한 정보에 닿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정보를 얻지 못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이런 비효율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인간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으며, 시장이든 정책이든 관계든, 형태만 바꿔가며 계속 되풀이된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시장 실패의 한 유형으로 다루지만, 내게는 조금 더 개인적인 문제로 느껴진다. 정보를 몰라서 손해를 보는 사람과, 정보를 알아서 이득을 보는 사람 사이의 격차는 능력의 격차가 아니라 접근성의 격차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 정부가 제공하는 복지 서비스를, 정작 그 혜택이 가장 필요한 취약계층이 몰라서 신청조차 못 하는 경우
- 같은 물건이 온라인·오프라인 등 유통 채널에 따라 다른 가격과 혜택으로 판매되지만, 이 정보가 부족해 상대적으로 비싸게 사는 소비자
- 구매하려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더 많은 정보를 가진 판매자에게 휘둘려 제값에 사지 못하는 소비자 — 흔히 협상력이나 구매력의 차이로 불리지만, 그 뿌리를 따라가 보면 결국 정보의 격차인 경우가 많다
- 전세 계약이나 부동산 거래처럼, 한쪽은 매물의 실제 상태와 권리관계를 속속들이 알고 다른 한쪽은 계약서 한 장으로 판단해야 하는 구조적 비대칭
- 보험이나 금융 상품처럼 약관이 복잡하고 전문적이어서, 정작 상품을 파는 쪽만 유리한 조건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경우
- 생애주기에 맞춘 정부 정책을 단지 몰라서 놓치는 경우. 대한민국 청년을 위한 취업지원정책, 각종 바우처, 자격증 응시료 지원, 주거비 지원, 면접 의상 지원 같은 제도들, 그리고 목돈 마련을 위한 저축에 지원금을 매칭해주거나 높은 이자율을 제공하는 사업들이 대표적이다
더 들어가 보면, 청소년기의 격차도 결국 정보의 비대칭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학원이 좋은지, 어떤 전형이 자신에게 유리한지, 어떤 활동이 입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는 성적이나 재능만큼이나 부모의 정보력에 좌우된다. 부모의 교육열과 정보 접근도에 따라 사교육의 질이 달라지고, 이는 다시 대학 진학의 격차로 이어진다. 결국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 것처럼 보여도, 누가 어떤 정보를 먼저 쥐고 있었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리는 셈이다.
정당한 격차와 부당한 독점을 구분하기
물론 개인이 더 노력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고, 그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으로 더 나은 혜택을 누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발품을 팔고, 비교하고, 공부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은 오히려 바람직하다. 내가 문제 삼는 것은 그런 정당한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지점은, 그 정보를 얻는 데 드는 사회적 비용이 지나치게 크거나 높아서,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할 많은 사람들의 접근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경우다. 정보가 어딘가에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을 찾고 이해하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 전문 지식이 너무 커서 사실상 특정 소수만 그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반대편에는 특정 집단이 정보를 독점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정부 재원 집행에 관여하는 공무원이 사전에 얻은 정보를 이용해 부당한 재산상 이익을 취하는 사례가 그렇다. 이는 하나의 예시일 뿐, 사회 곳곳에는 특정 정보에 먼저 접근할 수 있는 권한 자체가 부당한 이익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적지 않다.
다만 이런 형태의 의도적인 정보 독점은 이 글에서 깊이 다루려는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대체로 제도와 감시의 영역이다. 내가 진짜로 풀고 싶은 문제는, 악의는 없지만 구조적으로 정보가 흩어져 있고 접근 비용이 높아서, 선의를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단지 몰라서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을 줄이는 일이다.
앞으로
수학에서 프로그래밍으로, 그리고 이제는 사업으로. 나의 선택은 매번 그 순간 가장 끌리는 방향을 따라온 그리디한 여정이었다. 그 여정의 다음 목적지가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하는 일이라면, 이제는 이 문제를 어떤 형태로, 어떤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풀어갈지 고민할 차례다. 아직 답은 없지만, 질문의 방향만큼은 조금 선명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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