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에서 모험가로

2026. 7. 19. 12:01·일상

즐거움의 원천

나는 프로그래밍을 좋아한다. 왜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결국은 재미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생각을 정리해서 코드로 구현하고, 그것이 내 생각대로 굴러가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 머릿속에만 있던 아이디어가 몇 줄의 코드를 거쳐 실제로 움직이는 것을 보는 순간, 그리고 그것이 정확히 내가 의도한 대로 작동하는 순간, 나는 이상하리만치 큰 만족감을 느낀다.

돌아보면 이 즐거움의 구조는 단순하다. 내 능력을 써서 내가 상상한 것을 만들고, 그것이 실제로 작동할 때 얻는 피드백. 그 피드백 루프가 나를 계속 모니터 앞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그리고 나는 이 즐거움을 앞으로도 오래, 꾸준히 느끼면서 살아가고 싶다. 논리적으로 사고해서 거대한 아키텍처를 설계하고, 그것을 실제로 구현해서 견고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능력. 나는 그 능력을 계속 키워가고 싶다.

장인의 태도

강력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넘어, 나는 마스터피스를 만들고 싶다. 단순히 잘 작동하는 것과 애정을 담아 만든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신의 작품 하나하나에 애정과 자부심을 담았던 것처럼, 나도 내가 만드는 것에 그런 태도로 임하고 싶다. 견고하면서도 아름다운 것, 기능만이 아니라 만든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을 만들고 싶다.

실제로 나는 코드 한 줄 한 줄에 애정을 담아 짠다. 모든 줄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기준이다. 들여쓰기를 2칸으로 할지 4칸으로 할지, 스페이스를 쓸지 탭을 쓸지, 변수명은 스네이크 케이스로 할지 카멜 케이스로 할지 - 사소해 보이는 이 선택들에도 저마다의 맥락과 근거가 있다. 컴파일 경고와 최적화 옵션을 무엇으로 설정할지, 세니타이저로 메모리 오버플로우를 정적으로 잡아낼지 같은 결정도 마찬가지다. C89부터 C23까지 표준이 바뀌며 무엇이 달라졌는지, 각 기능이 내가 만들려는 시스템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따진다. 기능이 넘쳐나는 C++에서는 오히려 무엇을 쓰지 않을지를 고르는 것이 더 중요한 결정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알고, 하나하나 근거를 가지고 선택해왔다. 코드의 알파벳 하나까지도 왜 그렇게 썼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내가 오랫동안 가져온 장인정신이다. 이 태도는 지금도 내 정체성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쉽게 버리지는 않을 것 같다.

달라진 저울

하지만 AI가 등장한 이후로, 더 필요한 능력의 저울이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고 느낀다.

디테일을 추구하고 성능과 가독성을 극단까지 고민하는 태도는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졌다. 코드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짜는 일의 상당 부분을 이제는 AI가 함께, 때로는 더 빠르게 해낸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남는 가치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방향을 정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모니터에 얼굴을 바짝 대고 코드 한 줄 한 줄을 들여다보는 장인의 시선도 여전히 필요하지만, 이제는 물러서서 그 코드 전체가 완성되었을 때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누구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를 보는 시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어떤 비즈니스 모델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어떤 창의적인 기능으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유용성을 가져올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능력. 정확하게 만드는 것에서, 무엇을 만들지를 정하는 것으로. 디테일에서 창의성으로. 실행력에서 방향성으로.

나는 요즘 이런 쪽으로 생각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세상이 변하고 있으니, 나도 그에 맞춰 변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행히 이 변화가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버리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디테일을 다뤄본 사람만이 무엇이 진짜 디테일이고 무엇이 불필요한 집착인지 구분할 수 있고, 그 감각은 창의적인 판단에도 그대로 쓰인다.

모험가로의 변화

그래서 나는 이렇게 변화해보려 한다. 지금까지 쌓아온 디테일에 대한 감각은 단단한 바탕으로 남겨두고, 그 위에 더 넓은 시야와 창의성을 얹고 싶다. 정밀한 손끝의 감각과 멀리 보는 시야,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둘을 함께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오래, 더 잘 하기 위한 방향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최고의 동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나도 내 능력으로 서 있고 싶다. 여기서 최고의 동료란 단지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작업에 최고의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더 멀리 보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과 나란히 서기 위해서는 결국 실력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실력을 증명해서 그들과 어울리고, 함께 만들어가고 싶다. 기술을 선도하는 사람, 더 나아가 앞으로 나올 기술의 최전선에 서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장인에서 모험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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